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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개발협력

국제개발의 역사(1940~1950년)

by 젠틀앤러브 2022. 6.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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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개발협력의 초창기 역사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2차 세계대전 직후 국제개발협력이 본격화되기 시작하였으며, UN의 등장으로 국가 간 협력을 통한 국제개발협력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유럽부흥계획, 마셜플랜등에 대해서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940~1950년대 : 국제개발협력의 태동

국제개발협력이 본격화된 것은 제 2차 세계대전 직후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대부분의 식민지가 정치적으로 독립은 했으나, 서구 열강의 오랜 식민지 수탈로 인해 빚어진 가난의 참극에 대해 국제사회가 공동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1940년대 이전의 국제개발협력은 국제적십자사나 교회가 중심이 된 ‘국제구호 활동’이 주류이거나, 자국의 이익을 위한 원조나 기술 지원 등으로 작은 규모로 행해졌습니다.

이 시기 대규모 국제구호 활동은 1943년 UN 구제부흥기관(United Nations Relief and Rehabilitation Administration, UNRRA)의 활동 정도로 꼽을 수 있습니다. 이후, 1945년 전쟁이 끝난 후 UN이 설립되었고 UN의 등장으로 인하여 국가 간 협력을 통한 국제개발협력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게 되었고, 긴급구호도 전문화되기 시작하였습니다.

UN은 전문적인 긴급구호를 전담하는 식량농업기구(Food and Agricultural Organization, FAO), 세계보건기구(WHO), 국제연합아동기금(UNICEF) 등을 설립하였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국제개발협력은 인프라 구축과 긴급구호, 기술협력 이였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대공황의 여파로 이를 극복하기 위해, 국제사회는 식민지 간 자유무역을 실시하는 반면 블록 외 국가들에게는 보호관세장벽정책을 실시하는 ‘블록 경제’를 시도하였지만, 국제 통화 질서는 더욱 흔들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1944년 미국의 뉴햄프셔의 브레턴우즈(Bretton Woods)에서 미국의 달러를 기축통화로 하는 ‘브레턴우즈 협정(Bretton Woods Agreement)’을 체결하면서, 통화 안정을 위한 국제적 협력을 이룩함. 이후 이 협정을 기반으로 1945년 IMF와 세계은행의 전신인 국제부흥개발은행(International Bank for Reconstruction and Development, IBRD)이 창설되었습니다.

 

기축통화(key Currency)와 금본위제(Gold Standard)란 무엇인가?

기축통화란 국제 외환 시장에서 금융 거래의 중심이 되는 통화를 의미합니다. 대표적인 기축통화는 금입니다. 이러한 금이 국제 거래의 결제 수단으로 쓰이는 것을 ‘금본위체제’라고 합니다. 이 제도는 19세기 영국의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금을 화폐로 유통시킬 수 없게 되자 파운드화를 정해진 금의 비율과 교환할 수 있도록 하는 데서 시작됨. 이후, 파운드화의 가치가 하락하자 미국의 달러를 기축통화로 하자는 제안이 제기되면서, 미국의 달러를 중심으로 하는 ‘금환본위제도(Gold Exchange Standard)’로 전환되었습니다.

 

유럽부흥계획

미국과 소련의 자유 진영과 공산 진영 간의 냉전으로 인해, 미국은 진영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서유럽의 전후 복구를 지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유럽부흥계획’을 대대적으로 추진하면서, 1948년부터 1952년까지 총 130억 달러의 원조 자금을 투입하였습니다. 이러한 ‘유럽부흥계획’은 이를 주도했던 국무장관인 조지 마셜의 이름을 따 ‘마셜 플랜(Marshall Plan)’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1948년 마셜플랜의 순조로운 이행을 위해 유럽경제협력기구(Organization for Europe Economic Cooperation, OEEC)가 건립되었습니다. OEEC는 1961년 유럽 경제가 정상화되면서, 선진국 전체의 경제 발전 및 개발도상국에 대한 지원을 위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로 발전적 해체를 하였습니다.

 

‘마셜 플랜(Marshall Plan)’

마셜 플랜(Marshall Plan)’은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서유럽 16개 국가에 시행한 원조정책이었으나 서유럽 재건과 경제성장을 지원했을 뿐만 아니라 서유럽으로 소련의 영향력을 확산되는 것을 억제하는 데도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또한, 마셜플랜은 주로 유럽의 사회-경제적 인프라 재건과 구축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이에 대해 소련과 동유럽 국가들은 미국의 마셜 플랜에 반대를 하면서, 소련을 중심으로 공산주의 진영의 결속을 도모하고 자유주의 진영에 대항하기 위한 ‘몰로토프 플랜(Molotov Plan)’을 시행했습니다.

 

1950년대에는 미국을 중심으로 신생 독립국에 관심을 갖고 원조를 하기 시작하였으며, 미국 의회는 1950년 국제개발법을 제정해 미국 트루먼 대통령의 ‘포인트 포 프로그램(Point Four Program)’을 만들게 되었고, 이 프로그램은 개발도상국에 기술지원과 경제 원조를 위해 마련된 미국의 정책입니다.

 

이에 미국 외에 영국, 캐나다, 호주 등의 국가들도 ‘콜롬보 계획(Colombo Plan, 1950년)’이라는 신생독립국들의 경제 발전을 지원하기 위해 노력함. 1955년에는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신생 독립국들이 서로의 긴밀한 관계를 수입하고, 냉전으로부터 중립 선언을 목표로 인도네시아 반둥에서 제1차 아시아-아프리카 회의(Asia-African Conference)를 개최하였습니다. 이들은 비동맹 그룹을 결성함으로써, 모든 형태의 제국주의를 거부하고 ‘제 3세계’라는 새로운 세력을 형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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