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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개발협력

국제개발협력의 역사 : 1980년대~1990년대

by 젠틀앤러브 2022. 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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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개발협력의 역사 및 워싱턴 컨센서스를 공유해드리겠습니다. 이 글을 모두 읽어주신 분들은 국제개발협력의 역사 및 워싱턴 컨센서스를 알게 될 것입니다. 국제개발협력의 역사 및 워싱턴 컨센서스 가 궁금하시다면 반드시 끝까지 읽어주세요. 이제 국제개발협력의 역사 및 워싱턴 컨센서스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역사적 전개과정

1. 1980년대

 

1980년대는 개발과 빈곤 감소라는 국제개발협력의 영역이 축소되고, 세계은행과 IMF가 중심이 되어 개발도상국의 구조조정을 대대적으로 이룬 시기입니다. 또한, NGO의 역할이 공여국 정부의 필요에 의해 크게 증가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1990년대는 사회주의가 무너지면서 냉전이 끝나고, 본격적인 세계화가 진행된 시기입니다. UN은 1980년대를 ‘제3차 UN 개발 10년’으로 선언하고, 선진국들이 GNP의 0.7%를 ODA로 제공해야 한다고 촉구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경기 침체와 물가가 급격하게 상승하면서, 국제 수지까지 악화되어 실제 주요 선진 공여국들의 원조 예산이 상당히 삭감되었습니다.

 

1980년대는 남북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적 노력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던 시기였습니다. 그 이유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의 빈부격차가 크게 심화되면서, 남북문제가 신국제경제 질서를 위협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UN은 1981년 파리에서 제1차 UN최빈국회의를 개최하여 최빈국의 개발 문제에 관해 논의하였습니다. 최빈국회의는 10년마다 개최. (남남협력 논의가 주를 이룸) 하지만, 이러한 국제사회의 움직임에도 석유 파동과 경기 침체로 개발도상국들의 상황은 더 안 좋아졌는데, 이때부터 세계은행과 IMF를 중심으로 다양한 구조조정 프로그램들이 나왔습니다.

 

구조조정 정책(Structural Adjustment Program, SAP)을 통해 미국의 자본주의식 국가 발전 경제정책인 ‘워싱턴 컨센서스’가 대외적으로 확산되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아프리카나 중남미 국가들은 이러한 구조조정 정책에 대해 성공하지 못하였는데, 그 이유는 그 정책을 집행할 수 있는 ‘거버넌스’가 수립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980년대의 또 다른 특징은 ‘긴급 구호’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크게 증가하였다는 것입니다. 원조기관들도 효과가 바로 나타나는 긴급구호에 관심을 가졌으며, NGO를 통해 ODA의 상당 부분을 긴급 구호에 사용하였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국제 NGO의 수와 규모도 크게 증가하였으며, NGO들의 전문성과 기능이 강화되고, 개발협력의 새로운 주체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렇다면 1980년대에 NGO가 국제개발협력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었던 이유로는

 

①빈곤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개발도상국 정부의 대안으로 떠오름'

 

②NGO는 환경, 성평등, 사회 개발 등 개발의 새로운 논의들을 제공

(1989년 냉전이 종식되면서, 사회 구조나 환경도 새로운 이슈에 대한 논의가 활발)

 

2. 1990년대

 

1990년대 가 되면서 개발협력의 관심은 빈곤 퇴치를 비롯해 환경, 여성, 이주, 노동 등 다양한 이슈로 확대되었습니다. UNDP는 1990년 ‘인간개발보고서(Human Development Report, HDR)’를 발간하며, ‘인간 안보(Human Security)’의 중요성을 강조함. 이 HDR은 경제 중심 개발에서 ‘인간 중심의 개발’로 담론이 변화하는 계기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습니다.

 

또한, UNDP는 인간개발지수(Human Development Index, HDI)를 만들어 각국의 교육 수준, 1인당 국민소득, 평균 수명 등 206개 지표들을 바탕으로 빈곤과 개발의 정도를 매년 발표하고 있습니다. 또한, 같은 맥락에서 OECD가 1996년에 발표한 ‘21세기를 구상하며 : 개발협력의 기여 보고서’도 인간 중심의 개발 담론을 주장하며, ‘경제적 복지’, ‘사회적 개발’, ‘지속가능한 환경’을 주요 전략 목표로 두면서 이 보고서는 2000년 UN의 MDGs의 직접적인 기초가 되었습니다.

 

☞199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UN환경개발회의(United Nations Conference on Environment and Development, UNCED)에서 지속가능한 발전과 지구환경 보전을 위한 논의가 이루어졌습니다. 지구정상회담(Earth Summit)으로도 불린 이 회의에서는 ‘리우 선언’과 ‘의제21’을 채택했으며, 같은 해 192개 국가가 UN 기후변화협약(UN Framework Convention on Climate Change, UNFCCC)을 체결하도록 하였습니다. 이를 계기로 1997년 일본 교토에서는 ‘교토 의정서’를 채택해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를 규정하였습니다.

 

1990년대에는 개발 분야에서 젠더적 관점이 적극적으로 수용된 시기입니다. 1995년 중국 베이징에서는 189개 국가가 참여한 세계 제4차 여성회의가 열렸습니다. 이 회의에서 사회 및 정치적 결정에 여성의 평등한 참여가 보장될 수 있도록 하는 ‘성 주류화(Gender Mainstreaming)’가 주요 안건, 이 회의 결과를 토대로 ‘베이징 행동강령(BPFA)’를 합의하였습니다.

 

또한, UN은 1990년대 초부터 ‘정책 일관성’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였습니다. 세계은행은 1999년 ‘빈곤감소전략 보고서(Poverty Reduction Strategy Paper, PRSP)’를 발표하면서, 수원국에 기반을 둔 개발전략들을 강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커다란 흐름 속에서 조망할 때, 1990년대는 세계은행과 UNDP와 같은 다자간기구들이 원조를 이끌었던 시기였습니다. 다른 한 편에서 볼 때, 1990년대는 선진국의 원조 피로현상이 대두된 시기였습니다. 또한, 신자유주의와 구조조정 정책의 실효성이 입증되지 않고 오히려 개발도상국들의 채무만 늘어나고,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그래서, 199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IMF와 세계은행은 그 방향을 전환하게 되는데, 세계은행은 1999년 교육, 보건, 사회보장 등에 초점을 맞춘 세계은행 포괄적 개발 프레임워크(WB Comprehensive Development Framework, CDF)라는 개발 분석틀을 제시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이행을 위해 빈곤 감소전략(PRS)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이 빈곤감소전략은 수원국 스스로 계획을 수립한다는 점에서 주인의식이 반영되었다고 평가됩니다.

 

주요담론

1.워싱턴 컨센서스

 

-워싱턴 컨센서스(Washington Consensus)는 1989년 미국 국제경제연구소의 존 윌리엄슨이 처음 사용한 용어입니다. 워싱턴을 기반으로 하는 주요 국제금융기구, IMF, 세계은행, 독립적 싱크탱크, 미국 정부 정책 커뮤니티, 투자금융사 등이 주창하는 신자유주의 담론입니다. 워싱턴 컨센서스는 개발도상국들이 발전을 이루려면, ‘좋은 정책’과 ‘좋은 제도’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 ‘좋은 정책’에는 안정적 거시경제정책, 자유 무역, 민영화, 국가 소유 자산의 탈규제가 있고 ‘좋은 제도’에는 민주주의 정부, 지적재산권을 포함한 소유권 보호, 독립된 중앙은행, 투명한 기업 거버넌스입니다.

 

2. 굿거버넌스

1980년대 신자유주의와 워싱턴 컨센서스에 기반을 둔 개발도상국 구조조정 정책이 효과를 나타내지 못하면서, 그 근본 원인을 개발도상국의 거버넌스에서 찾게 되어서입니다. 원조효과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정부의 역량이 일정 수준 갖춰져야 합니다. 또한, 인권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향하는 굿거버넌스(Good Governance)는 개발의 목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냉전이 종식되면서 굿 거버넌스는 원조의 조건으로 부상되면서, 굿 거버넌스 지표가 높은 국가들에게 원조가 집중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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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개발협력의 역사 및 워싱턴 컨센서스를 알아보았습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른 정보도 필요하시다면 위의 글들을 참고하시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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